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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회

서울, 긴박한 계엄의 밤 - 6시간의 기록과 숨겨진 이야기

by 이서비주 2024.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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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긴박한 계엄의 밤 - 6시간의 기록과 숨겨진 이야기

안녕하세요.오늘은 지난 3일 밤 서울에서 펼쳐진 계엄 상황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불과 6시간 동안 벌어진 긴박한 사건들은 국회 출동, 포고령 발표, 계엄 해제 등으로 이어지며 정치권과 시민들 사이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숨겨진 이야기들을 함께 재구성해보겠습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주도적 역할

3일 밤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그로부터 7분 후,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서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주재한 주요 지휘관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장관은 계엄사령관을 임명하고 계엄 집행 전반을 주도했습니다.

국회에 특전사와 수도방위사령부 병력을 투입하는 명령 역시 김 전 장관이 내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김선호 국방부 차관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한 명령은 김 전 장관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결국 시민들과의 충돌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계엄 해제 요구가 본회의에서 가결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계엄 포고령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 제1호'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해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포고령의 법적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김 전 장관은 이미 법률적으로 검토된 사안이라며 이를 강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포고령 작성 주체에 대해 추궁했지만, 명확한 답변은 얻지 못했습니다.

시민들과 계엄군의 대치

계엄군은 자정 무렵부터 국회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특전사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병력 총 280여 명이 국회 경내에 투입되었으나, 현장에 있던 시민들과 야당 인사들이 강하게 저항하며 이를 저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으며, 시민들의 강한 저항에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은 공포탄과 테이저건 사용을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계엄사령관 박 총장은 이를 불허하며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 했습니다.

계엄 해제와 윤 대통령의 방문

4일 오전 1시,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했습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합참 지휘통제실을 방문해 상황을 정리한 후, 오전 4시 27분에 생중계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공식적으로 해제했습니다.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단 6시간 만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김용현 전 장관은 계엄군의 국회 진입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해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이후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고, 5일 오전 그의 면직안이 재가되었습니다.

결론

서울에서 벌어진 계엄 상황은 불과 6시간 동안 긴박하게 진행되었으며,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계엄 집행과 국회 투입 명령, 위헌 논란을 낳은 포고령 발표 등은 향후 정치적 논쟁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들은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켜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뉴스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으며 개인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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